고려 지채문 – 현종의 충직한 호위무사

고려 지채문 – 현종의 충직한 호위무사



고려 지채문

고려 지채문 그는 누구인가?

고려 지채문 관련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고려 거란전쟁 드라마. 이 드라마에서 충성스러움의 상징, 무력 99의 장수가 있으니 그가 바로 지채문입니다.

최초 등장은 동북면에서 여진족을 때려잡는 장수로 등장을 하는데요. 이후 서경을 구원하러가고, 현종의 몽진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그동안 인지도가 낮았었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양규 장군과 함께 인지도가 수직 상승한 인물이 바로 지채문입니다.

지채문은 누구이며, 어떤 전공을 올렸던 사람인지 간단히 알아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채문

고려의 제8대 국왕 현종 시대에 활약한 무장 및 관료인 고려 지채문(鳳山 智氏)은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의 충성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그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거란(요나라)의 제6대 황제 성종이 시작한 제2차 여요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고려 지채문은 현종의 시대에 현종의 안전과 국가의 안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의 충성과 뛰어난 전투 능력은 현종을 보호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정신과 힘은 고려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

거란의 침공에 맞서다

고려 현종 시기에 중랑장으로 임명된 고려 지채문은 거란의 제2차 침공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때, 현종의 명령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화주에 진을 치고 동북면을 방어하던 중, 고려의 대군이 통주 전투에서 대참패를 당하여 서경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에 현종의 명령으로 지채문은 서경을 지원하러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경은 내부적으로 거란에 항복하는 것을 주장하는 의견이 강했습니다. 서경 내부에서는 거란에 항복한 노의 등의 배반자들이 있었고, 고려의 지원군에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채문은 서경에 진입하여 항복할 길을 막기 위해 거란의 사절들을 암살하고 서경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서경 내부의 불안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지채문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고려군은 다시 임전 태세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후 거란군의 공격에도 지채문은 탁사정과 합쳐 싸움으로써 대승을 거두었지만, 역습을 당하여 패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채문의 헌신적인 노력은 고려의 안전을 위협하는 거란의 침공에 대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현종의 호위무사 그리고 업적들

고려의 제8대 국왕 현종이 몽진을 떠날 때, 고려 지채문은 호위무사로 현종을 섬겼습니다. 현종은 몽진을 떠나기 전에 조정의 패닉 상태와 항복론의 대두를 겪었으나, 강감찬의 강력한 주장으로 몽진을 결정했습니다. 이에 지채문은 선뜻 앞장서 현종의 호위를 자청했고, 이에 현종은 크게 감동했습니다.

현종 일행은 몽진 중에 다양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지채문은 서경 내부의 항복론자들과 거란의 사절을 암살하여 항복을 막고, 견영의 변란을 무마시키는 등 침착한 대처로 현종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현종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지채문은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현종을 보호하였습니다.

현종 일행이 사산현에 도착했을 때에는, 지채문은 기러기떼를 이용하여 현종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불만을 품은 병사들을 포상하여 달랬습니다. 또한 조용겸의 호위를 거부하고 현종을 안전하게 지키며 호위했습니다.

전주에서는 조용겸의 수하들이 현종을 만나 뵙게 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나주에서는 잘못된 증언을 이용하여 현종을 놀래킨 군사의 오해를 해소하고 현종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지채문의 뛰어난 전략과 침착한 대처로 현종의 목숨을 지키고, 고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차 고려 거란 전쟁 이후의 지채문

지채문은 제2차 여요전쟁 이후에도 고려의 안전과 현종의 보호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1016년에는 우상시(右常侍)로 임명되었으며, 무직(武職)을 겸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현종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1026년(고려 현종 17년) 음력 4월 24일에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나 승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채문은 헌신적으로 현종의 보호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그의 죽음은 고려에 큰 애도를 안겨주었습니다.

1031년에 즉위한 제9대 덕종 때, 지채문은 선왕 현종의 남행을 힘써 호위한 공로로 1등 공신에 추증되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봉사는 고려 역사에서 빛을 발하며,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후대 지채문의 평가

지채문은 제2차 여요전쟁에서 현종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해내며 고려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현종을 굳건히 지켰으며, 그의 충성심과 용기는 활을 잘 쏘는 능력뿐만 아니라 왕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현종이 환도하여 토지를 주고 지채문의 공로를 칭찬한 것은 그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현종은 지채문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충성심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강감찬과는 달리, 지채문의 인지도는 낮았습니다. 이는 강감찬의 대승과 그에 대한 관심이 크고, 그의 업적이 두드러진 반면에, 지채문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고려 거란전쟁 드라마를 통해 그 인지도가 수직 상승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고려 지채문 관련해 알아본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이번 드라마를 통해 알게된 장수가 지채문이었는데요. 왜 이렇게 무력도 뛰어나고, 충성심도 강했던 훌륭한 장수를 알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 드라마를 통해 지채문 이라는 장수를 알고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으로 고려 지채문 관련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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