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전쟁 이자림 – 왕가도 그는 누구인가

고려 거란전쟁 이자림 – 왕가도 그는 누구인가



고려 거란전쟁 이자림

고려 거란전쟁 이자림

고려 거란전쟁 이자림 관련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물을 알고 드라마를 보시면 더 재미있게 시청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자림 출신

이자림(李子琳), 나중에 이가도(李可道)로 불리는 이자림은 고려 현종 대의 문신으로, 청주 이씨 출신입니다. 과거에는 성종 대에 급제하여 조정에 입문하고, 서경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개경의 나성 축조를 총괄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공로로 사성정책에 따른 국성을 하사받아 왕가도(王可道)가 되었습니다.
이자림은 고려의 성종, 목종, 현종, 덕종 4대 임금을 섬기면서, 특히 현종 대에 큰 활약을 하여 현종의 배향공신으로 일컬어졌습니다.

재상에서 배향공신까지

이자림은 서경의 일개 말단 하급관리에서 시작하여 걸출한 재상의 자리까지 영전하고, 마침내 배향공신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능력과 인내는 그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김훈 최질의 난

현종 즉위 후, 이자림은 그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무관 김훈과 최질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현종에게서 권력을 탈취하려고 할 때, 이자림은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는 승진하여 화주 방어사가 되었고, 그 후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자림은 중추원 일직 김맹을 통해 현종에게 한고제가 운몽에서 놀이한 고사를 아냐고 물으며 은근슬쩍 자신의 뜻을 알렸습니다.
이 고사는 한고조 유방이 이성 제후왕들을 숙청할 때, 운몽에서의 연회를 이용하여 초왕 한신을 체포하고 처리한 고사입니다.
이 뜻을 알아차린 현종은 이자림을 권서경유수판관 직에 임명하고 서경으로 보냅니다.
현종은 이자림의 배후에서 조용히 계획을 세우고, 이자림은 준비를 마쳤습니다. 현종은 김훈, 최질 등 권력자들을 데리고 서경의 장락궁으로 가서 연회를 엽니다. 그리고 그들이 취할 때 19명을 죽이고, 그들의 가족을 체포하여 귀양보내면서 난을 진압했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이자림은 현종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고위직으로 승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능력과 결단력은 현종의 정치적 동요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개경 나성 건축

이자림은 조정에서 상당한 발언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려 최고 정부기관인 내사문하성의 참지정사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자림은 강감찬의 제안으로 시작된 개경 외성 건설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당대의 중요 인사들이 참여한 거대한 사업으로, 23km에 이르는 나성 공사가 21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나성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결과로, 이가도는 개성현 개국백의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 김씨도 개성현부인으로 봉해졌으며, 이로써 공식적으로 왕씨 성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가도가 아닌 왕가도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자림의 장녀인 원질귀비가 현종의 후궁이 되면서, 왕가도는 당대의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덕종 재위 시절

이자림의 차녀 경목현비는 덕종과 결혼하였고, 이자림은 국왕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에 임명되어 내사문하성의 2인자급 직위를 맡게 되었습니다.
덕종은 거란과의 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했으나, 왕가도는 임금의 외교 방향에 동의했습니다. 거란의 고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사신 파견을 중단하고 연호 갱신을 거부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의견은 많은 대신들의 반대 속에서도 덕종에게 받아들여졌고, 이로써 고려와 거란 간의 외교는 단절되었습니다.
덕종의 배향공신 류소가 의주 침공을 건의할 때, 왕가도는 적극 찬성했고 덕종에게 출정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중신들의 반대로 출정은 취소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이도 많아지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낀 왕가도는 결국 사퇴를 결심하고 청주로 낙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자림의 최후

1034년 5월 정축일에 사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나라에서 장례식을 치르며 명예직인 태사와 중서령을 추증받았습니다.
그의 묘소는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왕가도는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해서가 뛰어났습니다. 그의 유작으로는 고성에 위치한 <발연사진표율사장골탑비>가 남아있습니다.

드라마 고려 거란전쟁의 이자림

화주 방어사로 등장

드라마의 24회에서 이자림은 화주 방어사로 등장합니다. 평생 군사 일을 한 적 없는 강감찬을 멸시하는 중랑장 도용수를 비롯한 동북면 장수들 중에서는 드물게 강감찬에게 호의적인데, 아무래도 본인도 문관 출신이기에 동질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도용수가 강감찬을 모욕 줄 목적으로 병사들과 대련을 시키자 도용수를 비판하나, 오히려 강감찬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도용수를 굴복시키자 큰 감명을 받습니다.

반고려 성향 여진족과의 전투

이후 이자림은 아리타가 이끄는 반고려 성향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강감찬을 구하는 등 활약합니다.

현종의 명령 수행

25화에서는 여전히 중랑장 도용수와 함께 여진족과의 전투를 끝내고 쉬고 있던 중에서 동북면으로 달려온 강감찬을 맞이합니다. 그 후 개경의 상황을 전달받은 뒤 도용수와 함께 강감찬과 함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전합니다. 하지만 26화에서는 현종의 명령으로 동북면으로 철군하게 됩니다.

김훈, 최질의 난

27화에서는 김훈, 최질의 난을 타개할 계획을 현종에게 전달할 것으로 보이며, 현종이 거란의 친조요구와 맞물려 서경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거란전쟁 이자림 관련해 알아본 내용은 여기까입니다. 이자림 혹은 이가도, 혹은 왕가도. 그는 하급 관리에서 시작해 재상에 까지 오른 인물이며, 김훈 최질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 고려 초기의 문신이었습니다.

이자림에 대해 알고 고려 거란전쟁 드라마를 시청하신다면 더욱 재미가 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려 거란전쟁 이자림 포스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더 다양한 포스팅을 다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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